투습성이란? 수분은 어떻게 포장재를 통과할까?
과자 봉지를 뜯어놓고 며칠이 지나면 바삭했던 과자가 눅눅해집니다. 반대로 촉촉한 식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을 잃어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포장이 완전히 밀봉되어 있는데도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PET병을 통해 산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가 서서히 이동할 수 있다는 가스 차단성을 살펴봤습니다. 수분도 비슷합니다. 플라스틱 필름이나 용기는 물방울을 막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까지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포장재가 수증기를 얼마나 잘 막는지를 이해할 때 필요한 개념이 투습성입니다.
투습성이란 무엇일까?
투습성은 수증기가 재료를 통과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특성입니다.
반대로 수증기의 이동을 얼마나 잘 막는지를 이야기할 때는 수분 차단성 또는 수증기 차단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투습성이 낮은 포장재일수록 일반적으로 수증기를 잘 차단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여기서 물과 수증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닐봉지에 물을 담았을 때 물이 새지 않는다고 해서 수증기도 전혀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액체 상태의 물이 용기의 틈을 통해 새는 것과 분자 상태의 수증기가 고분자 내부를 이동하는 것은 서로 다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완벽하게 밀봉된 것처럼 보이는 포장도 장기간 보관하면 내부의 수분 상태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분은 플라스틱을 어떻게 통과할까?
플라스틱 필름을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수증기가 지나가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투과 과정은 조금 다릅니다.
고분자는 긴 분자 사슬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증기 분자는 포장재 표면과 접촉한 뒤 소재와 상호작용하면서 내부로 들어가고, 고분자 구조 사이를 이동한 후 반대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동에는 소재의 분자 구조와 수증기에 대한 친화성, 고분자 사슬의 움직임 등이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플라스틱의 종류가 달라지면 수증기가 이동하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단순히 필름이 두꺼워 보이는지, 단단한지 정도만으로 수분 차단 성능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과자 봉지는 왜 그냥 투명 비닐로 만들지 않을까?
투습성을 이해하기 좋은 사례가 과자 포장입니다.
바삭한 과자는 주변의 수분을 흡수하면 식감이 빠르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장 내부로 들어오는 수증기를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자 포장에는 수분 차단성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산소로 인한 산패를 억제해야 하는 제품도 있고, 빛에 민감한 내용물도 있습니다. 봉지가 쉽게 찢어지지 않아야 하고 인쇄가 가능해야 하며 밀봉하기에도 적합해야 합니다.
하나의 플라스틱이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필름을 조합한 다층 포장재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얇은 봉지 한 장처럼 보여도 실제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는 것입니다.
PE와 PP는 수분 차단에 왜 많이 사용될까?
PE와 PP는 포장재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두 소재는 물을 잘 흡수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분 차단이 필요한 다양한 포장 구조에서 활용됩니다.
특히 PE는 필름으로 가공하기 좋고 열접착에도 유리해 포장재의 내부층 등에 폭넓게 사용됩니다. PP 역시 식품 포장용 필름과 용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PE나 PP라고 해서 수증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재질이라도 밀도와 분자 구조, 필름의 두께와 가공 방법 등에 따라 실제 투습 특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장재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PE라서 수분에 강하다’는 정도에서 끝내지 않고 실제 제품에 필요한 차단 수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PET는 가스도 막고 수분도 완벽하게 막을까?
앞서 PET가 음료 포장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를 살펴보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에 대한 가스 차단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PET가 수분까지 가장 잘 막는 소재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포장재의 차단성은 무엇을 막으려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산소 차단성이 뛰어난 소재가 수증기 차단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PET는 기계적 강도와 투명성, 가스 차단 특성 등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포장의 목적에 따라 다른 소재와 조합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포장재를 평가할 때 ‘차단성이 좋다’라는 표현만 사용하는 것보다 산소인지, 이산화탄소인지, 수증기인지 대상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촉촉한 식품에서는 반대 방향의 이동도 문제다
수분 차단이라고 하면 외부의 습기가 식품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식품 자체가 많은 수분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 상황도 중요합니다.
빵이나 떡, 일부 가공식품처럼 수분이 식감에 큰 영향을 주는 제품은 포장 내부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건조해지고 품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포장재는 외부의 수분이 들어오는 것뿐 아니라 내용물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도 적절하게 억제해야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수증기가 이동하는지는 포장 안팎의 수증기 상태와 환경 조건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같은 포장재라도 건조한 환경과 습한 환경에서 보관했을 때 내용물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투습도와 투습성은 어떻게 확인할까?
포장재 업계에서는 수증기가 필름을 얼마나 통과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수증기 투과율을 사용합니다.
흔히 WVTR(Water Vapor Transmission Rate)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 조건에서 일정 면적의 재료를 일정 시간 동안 통과하는 수증기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험 조건입니다.
WVTR 숫자 하나만 떼어놓고 서로 다른 필름을 단순 비교하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온도와 상대습도, 시편 두께 등 시험 조건이 다르면 측정 결과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재의 투습성을 비교할 때는 같은 조건에서 측정된 값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름을 두껍게 만들면 수분을 더 잘 막을까?
같은 재료와 조건이라면 일반적으로 두께가 증가할수록 수증기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투과를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포장재를 두껍게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필름이 두꺼워지면 사용하는 원료가 늘어나고 무게와 비용도 증가합니다. 제품에 따라서는 유연성이나 가공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포장재 설계에서는 필요한 차단 성능을 확보하면서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성능을 얻기 위해 단순히 두께만 늘리는 대신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소재를 얇게 조합하는 방법이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가 달라지면 투습성도 달라진다
수증기의 투과는 주변 환경과 무관한 고정된 특성이 아닙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고분자 사슬과 수증기 분자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고, 포장재 안팎의 습도 조건 역시 수분 이동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수분과 상호작용하기 쉬운 소재는 습도가 높아졌을 때 소재 자체의 상태가 달라지면서 차단 특성이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식품 포장을 설계할 때는 실험실에서 측정한 하나의 수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유통되는 환경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상온의 건조한 창고에 보관되는 제품과 고온다습한 환경을 거치는 제품에 동일한 포장 조건이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포장을 뜯은 뒤 과자가 빠르게 눅눅해지는 이유
밀봉된 과자 봉지를 뜯는 순간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포장재 자체를 통과하는 수증기의 양보다 열린 입구를 통해 외부 공기가 직접 들어오는 영향이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이 과자로 이동하면서 바삭한 식감이 빠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봉 후 눅눅해지는 현상과 밀봉 상태에서 장기간에 걸쳐 포장재를 통해 발생하는 수증기 투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퍼백이나 밀폐용기를 사용하면 개봉된 상태보다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줄일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용기나 필름 자체의 차단 성능과 밀폐 상태에 따라 보존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투명한 포장과 은색 포장은 차단성이 다를까?
과자나 커피 포장지를 보면 안쪽이 은색으로 보이는 제품이 많습니다.
이런 포장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품에 필요한 차단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금속층을 적용하거나 알루미늄을 포함한 구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산소나 수증기, 빛에 대한 차단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은색 포장이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금속이 매우 얇게 증착된 필름과 알루미늄 포일이 포함된 포장재는 구조와 특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으로 정확한 재질 구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포장재의 성능은 결국 눈에 보이는 한 층이 아니라 전체 구조로 평가해야 합니다.
가스 차단성과 투습성은 서로 다른 물성이다
산소를 잘 막는 소재가 반드시 수증기도 가장 잘 막는 것은 아닙니다.
분자의 크기와 성질이 다르고 각각의 고분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품 포장에서는 산소 투과율과 수증기 투과율을 별도로 평가합니다.
탄산음료에서는 이산화탄소 유지가 중요할 수 있고, 산화에 민감한 식품에서는 산소 차단이 중요합니다. 바삭한 과자나 건조식품에서는 수분 차단 성능이 특히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떤 차단성이 가장 중요한지는 내용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포장재는 무조건 모든 것을 막는 소재가 아니다
포장재의 목적은 가능한 모든 물질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식품의 특성과 목표 보관 기간에 필요한 수준의 차단성을 확보하면서 강도와 투명성, 밀봉성, 가공성, 무게, 비용 등을 함께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재활용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차단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소재를 여러 층으로 결합하면 성능은 좋아질 수 있지만, 재활용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재질을 분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장재는 단순히 성능이 높은 소재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성능과 자원 효율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과자 봉지가 눅눅해지는 현상 하나에도 고분자의 구조, 수증기의 확산, 포장재의 두께와 다층 구조, 온도와 습도 같은 여러 요소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버리는 얇은 포장지 한 장도 실제로는 내용물의 수분을 유지하고 외부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여러 물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소재인 셈입니다.
SJ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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